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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명칭 유래


   서울이라는 명칭의 유래에 관해 학계에서는 삼국시대 신라 때로 보고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신라 혁거세왕에 대한 내용을 보면 나라를 세우고 국호를 서라벌(徐羅伐), 또는 서벌(徐伐), 사라(斯羅), 사로(斯盧)라고 했고, 이후 이것이 도읍의 명칭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이름들은 수도(京)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고, 그것이 오늘날의 서울이라는 말로 변하게 되었다.

   삼국시대 서울은 백제 온조왕 때(기원전 18)부터 제21대 개로왕 때(475년)까지 약 500년 동안 백제의 수도였다. 오늘날 송파구에 남아있는 풍납토성이 당시의 왕성이었고, 위례성, 혹은 한성으로 불리었다. 그러다가 신라가 진흥왕 때에 한강 유역을 장악하면서 신주(新州)를 설치하였고(552년), 선덕왕 때에는 서울 지역을 한산주(漢山州)로 개칭(637년), 이후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고 전국을 9주로 나누게 되면서 경덕왕 때에 한산주를 한주(漢州)로 고치게 된다(757년).

   고려시대에 들어오면서 서울 지역은 초기에는 양주(楊州)로 불렸다. 그 후 문종 때에 남경(南京)으로 승격되었다가(1067), 원간섭기인 충렬왕 때에 중앙과 지방 조직을 개편하면서 한양부(漢陽府)로 바뀌게 되었다(1308).

   이후 조선이 건국되면서 한양을 도읍으로 정하게 되었고(1394년), 오늘날까지 우리나라의 수도로서 자리매김하게 된다. 아울러 조선시대 정식 명칭은 한성부(漢城府)였다. 이외에도 당시 만들어진 고지도나 문집 등에는 한양, 경도, 경성 등으로 표기되기도 했다.

   한편 일제강점기에는 한성부를 경성부로 개칭하고 경기도에 예속된 하위 관청으로 격하시켰다. 그리고 대외적인 정식 명칭은 일본어 발음인 게이조라고 불렀다. 물론 경성이라는 단어는 원래 삼국시대부터 고려와 조선에 이르기까지 널리 쓰였던 것이었으나 이 시기 이후부터 경성이라는 단어는 역사적, 혹은 문화적으로 일제강점과 관련된 단어로 변하게 되었다.

   해방 직후 서울은 서울, 경성, 한성 등 혼재된 이름을 사용했다. 
심지어 미군정 표기와 서울시 자체 표기가 다를 때도 있었다. 그러다가 1년 후인 1946년 8월 15일자로 서울특별자유시로 이름이 바뀌었고, 경기도와 대등한 관계의 행정기관이 된다. 그러다가 정부수립 이후인 1949년 11월 지방자치법이 공포되면서 서울특별시로 정해져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