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통은 남대문 서북쪽에 조선시대 중국 사신이 머물던 태평관이 있었던 데서 유래되었다. 태평통은 태평로의 일제강점기 이름이다. 태평통은 1912년 11월 6일 조선총독부고시 제78호 <조선시구개수예정계획>에 이 길을 폭 27m로 정하고 이해 시공하였다. 1914년 6월에 간행된 <경성부명세신지도>에 태평통으로 표기되어 그 이전에 개통된 것으로 보인다. 1936년 <조선시가지계획령>에 따른 조선총독부고시 제722호와 1939년 9월 18일 조선총독부고시 제757호 계획가로망 발표 때의 이 길의 폭은 34m, 길이 800m로 하여 황토현광장에서 남대문에 이르는 구간이 정해졌다. 광복 후 1946년 10월 1일 일제식 지명을 우리 지명으로 바꿀 때 황토현사거리(세종로사거리)에서 남대문에 이르는 1,009 m 길이의 도로인 태평통을 태평로로 개칭하였다.
서울역사편찬원은 지명에 대한 주소 신뢰도를 세 가지 색으로 구분하여 제공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