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릉동(孔陵洞)
공릉동 동명은 1963년 경기도에서 서울특별시로 편입될 때 양주군 노해면 공덕리를 공덕동으로 개칭하면서 이때 마포구의 공덕동과 동명이 같으므로 처음에는 泰陵洞으로 정했으나 서쪽 공덕리 주민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공덕리의 ‘孔’자와 동쪽 태릉의 ‘陵’자를 따서 합성한 데서 유래되었다. 공릉동은 조선 초부터 양주목 노원면에 속하였고, 고종 32년(1895) 윤5월 1일 칙령 제98호로 전국이 23府 336郡으로 개편되자 이곳은 한성부 양주군 노원면이 되었다. 이듬해 1896년 8월 4일 칙령 제36호에 의한 지방제도 개정에 따라 전국이 13道로 되면서 경기도 양주군 노원면에 속하게 되었다. 1914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해 노원면은 해등촌면과 합하여 노해면이 되었고, 노원면 공덕리・무수동・묘동리, 망우리면의 묵동리 일부를 합하여 양주군 노해면 공덕리가 되었다. 공덕리는 흔히 공덕골(굴)이라고 부르는 공덕동의 대표적인 큰 마을 이름에서 유래하였다.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2호에 의해 공덕리는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편입되었으며, 이때 공릉동으로 개칭되었다. 1973년 7월 1일 대통령령 제6548호로 도봉구가 신설되면서 도봉구에 속했다가 1988년 1월 1일 대통령령 제12367호에 의해 노원구가 신설되면서 노원구에 소속되어 오늘에 이른다.
-
공릉동(孔陵洞)
공릉동 동명은 1963년 경기도에서 서울특별시로 편입될 때 양주군 노해면 공덕리를 공덕동으로 개칭하면서 이때 마포구의 공덕동과 동명이 같으므로 처음에는 泰陵洞으로 정했으나 서쪽 공덕리 주민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공덕리의 ‘孔’자와 동쪽 태릉의 ‘陵’자를 따서 합성한 데서 유래되었다. 공릉동은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 공덕리였다가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2호와 서울특별시조례 제274호에 의해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편입되었다. 따라서 서울특별시에 편입되기 전에는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의 관할을 받다가 편입 이후에는 1963년 1월 1일 서울특별시조례 제275호에 의해 태릉동이 설치되어 공릉동과 하계동 일원을 관할하게 되었다. 이후 1970년 5월 5일 서울특별시조례 제613호에 의해 태릉동은 공릉동으로 그 명칭이 변경되었다. 이는 행정동과 그 관할구역인 법정동의 명칭이 서로 달라서 생기는 혼란과 불편을 덜기 위하여 행정동명을 관할구역 가운데 한 법정동명으로 바꾼 것이다. 이어 1973년 7월 1일 대통령령 제6548호로 성북구에서 도봉구가 분리・신설됨에 따라 공릉동은 도봉구 관할이 되었다. 이후 1980년 7월 1일 서울특별시조례 제1413호에 의해 공릉동은 공릉제1동・공릉제2동・하계동으로 분동되었다.
-
공릉동(孔陵洞)
노원구 공릉동에 있던 마을로서, 1914년 노원면의 공덕리・안골・무수동・묘동리・능골을 합하여 노해면 공덕리가 되었다가, 1963년 서울특별시로 편입될 때 공덕동으로 개칭하면 마포구 공덕동과 같은 이름이 되므로 공릉동이라 하였다. 이때 이곳에 문정왕후의 능인 태릉이 있다 해서 태릉동이라 하고자 했는데, 이 지역 가운데 마을이 먼저 형성되었던 공덕리 주민들의 반발로 태릉동을 동명으로 사용하지 못하고, 양쪽 마을의 첫 글자를 합성하여 공릉동이 되었다.